「 모든 집에 무몰딩이 어울리는가? 」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이 꼭 멋진 사람인 것은 아니듯,
유행하는 디자인을 모두 적용한다고 해서 멋진 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의뢰인이 보내준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사진 속에는
앤틱한 가구들과,
오래되었지만 소중하게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는 식탁과 의자들이 있었다.
가지런히 정돈된 가구들을 보며
의뢰인이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에는 어떤 동선으로 움직일까.
요리를 할 때는 어떤 풍경을 바라보면 좋을까.
주말 오후, 가족들은 거실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이곳에 살아갈 사람의 하루를 상상해보며 설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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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左) 이후(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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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이 보내주신 기존 가구들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이 집의 문과 문틀을 그대로 살려보기로 했다.
새로운 것으로 모두 바꾸는 대신
기존의 프렌치한 도어 디자인은 그대로 두고,
진한 우드 컬러였던 문에 필름을 입혀 새로운 공간에 어울리도록 했다.
오래된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집에 맞게 다시 사용하는 것.
이 집에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인은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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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많은 고민이 필요했던 곳은 주방이었다.
‘이 벽을 저쪽으로 옮겨볼까?’
‘아일랜드를 돌려볼까?’
벽을 옮겼을 때,
철거했을 때,
주방의 구조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수납은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지,
가족들의 동선은 어떻게 바뀌는지.
가능한 레이아웃을 하나씩 그려보며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주방 한가운데에 철거할 수 없는 기둥이 걸림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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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된 주방 구조는 의뢰인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타워형 구조라 주방의 3면이 모두 창으로 되어 있었는데,
의뢰인 : "저 풍경을 보면서 요리하면 참 좋을 텐데."
나 : "아일랜드를 꺾어볼까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가 지금의 주방 구조가 되었다.
철거할 수 없는 기둥은 오히려 공간의 중심이 되었고, 주방에서 바라보는 풍경까지 고려한 이 집만의 레이아웃이 완성되었다.
구조가 완성되면
그 위에 톤을 입힌다.
내가 공간을 디자인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절제된 조화다.
메인톤, 서브톤 그리고 포인트.
세 가지가 서로 어우러질 때
공간은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 집의 메인톤은 화이트.
서브톤은 원목의 따뜻한 색감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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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들어간 200×200 타일,
기둥에 사용한 모자이크 타일,
주방 가구의 도어 컬러까지.
비슷한 화이트 안에서도
서로 다른 소재와 질감을 섞어
공간이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세라믹 상판과 가구 손잡이에 확실한 포인트를 더했다.
모든 공간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시선을 머물게 할 것인지 먼저 정하고,
나머지는 조금 덜어내는 것.
오히려 그 절제가
집 전체를 더 고급스럽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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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의뢰인에게 일상이 조금 더 행복해지는 공간을 선물하고 싶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발을 내딛는 공간이 유럽의 에어비앤비처럼 느껴진다면,
매일의 평범한 아침도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 집의 욕실 바닥에는 유럽의 어느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 같은 타일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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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타일을 정하고, 그다음에는 그 분위기를 완성해줄 서브 타일을 찾는다.
어딘가 오래된 듯한 빈티지 모자이크 타일.
유럽 여행 중 우연히 들른 작은 서점에서 발견했을 것 같은 액자.
욕실 가운을 걸어둘 액세서리와 수건걸이까지.
하나의 공간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 중 어느 것 하나 쉽게 고를 수 있는 것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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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가 시작되면
24시간 내내 이 공간을 생각하고 수없이 고민하고,
잘 풀리지 않아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 끝에
한 가족의 일상이 더 행복해지는 공간을 선물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유행하는 것을 모두 담는 집보다
그곳에 살아갈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담은 집.
새로운 것을 무조건 더하기보다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단순히 예쁜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 살아갈 가족에게 딱 맞는 집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